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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2021.03.06. 'E의 일기'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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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롤 경기(와 채팅)을 보고 있었다.

KT가 형편없는 경기력으로 밀리는 상황이었는데

 

어떤 사람이

'강동훈 저새끼는 ㄹㅇ 럭키 김동수임'

 

이라는 채팅을 했다.

 

 

의식의 흐름이 에스퍼란자라는 사람으로 가기까지의 과정은 이랬다.

 

나무위키에서

 

김동수 뭐하고 사나 -> 나이스게임티비에서 짤리곤 아무것도 없나보다 -> 나이스게임티비 출신 인물들은 뭐하고 사나

-> 에스퍼란자 이사람은 예전에 말 많았던 것 같은데 뭐하고 사나? -> 인터넷에 이 사람이 쓴 글이 있는데 20년 12월에 썼네?

 

그렇게 읽게된 수필

 

www.postype.com/profile/@p03yl9

 

E의일기

 

www.postype.com

 

에스퍼란자는 클로저스 메갈리아 티셔츠 인증사건때 나겜에서 짤렸던 캐스터이다.

 

초창기 티셔츠 게이트에서, 사상검증을 당한 유명인들은 대부분 분노에 가득차 독자나 악플러들과 맞서고,

소위 '못 배운 이들'을 조롱했다.

 

아마 그때 여럿이 자기 자리에서 내려왔을거다.

 

어찌되었든 소신발언한 사람들의 목이 잘려나가자 이후 사람들은 대체로 독자들과 타협했다.

사과문을 쓰거나, SNS를 날리거나, 메갈리아와 선을 긋고 사람들을 자극하지 않거나..

 

특히 문화계에서는 초창기에 소신발언이 쏟아져 나왔는데,

 

남초문화계와 여초문화계에서의 심판은 극명하게 갈렸다.

 

 

게임계(남초)에서 소신발언 했던 유명인들은 대부분 유저들에 의해 짤렸다.

 

웹툰계? 일시적인 별점 테러는 있었으나, 애초에 독자층 대부분이 여성인 작가들이었던지라 실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에스퍼란자는 남초문화 중에서도 끔찍하게 남자밖에없는 롤 해외리그 캐스터였기에 티셔츠 사태로 밥줄이 끊긴 사람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세게 두들겨 맞은 사람 중 하나이고,

 

심지어 그는 시청자들에게 머리박고 사과하기보다 적극적으로 투쟁하길 선택했다.

 

내가 활동하던 커뮤니티는 그때 끽해봐야 롤 관련해선 롤갤이나 롤인벤 정도가 다였고, 거기 전시된 에스퍼란자의 글에선 엄청난 분노와 증오가 느껴졌었다.

 

궁금해서 직접 찾아본 그의 트위터 계정.

하루에도 분노와 혐오로 몇십개씩 쌓이던 그의 타임라인은 그가 정상적인 사람이라곤 생각되지 않게 했다.

 

그 당시에 트위터에는 하루에도 몇천 알티씩 지지를 받는 페미니스트 논객들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때 에스퍼란자는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피해를 받은 불행한 게임캐스터'였기에 당대에 잘나가던 한규동, 이자혜, 위근우와 같은 인기스타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다수의 지지를 받는 논객 비슷한 위치에서 하루에도 몇십개씩 글(또는 리트윗)을 쓰며 활동했다.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스쳐지나가는 페미니즘 이슈였고, 내가 그에 대해 가졌던 관심도 거기서 끝났다.

뭐 지금도 페미니스트로서 서브컬쳐 어딘가에선 잘먹고 잘살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은 했다.

 

 

 

그런데 그 누군가에게는 지옥같은 시간이었나보다.

 

다시 찾아본 그의 근황과 그의 시점에서 바라본 티셔츠 사태는 내가 생각했던것 보다는 훨씬 끔찍했고 안타까웠다.

(필력 자체가 좋아서 순식간에 1화부터 끝까지 읽어내렸다)

 

그가 불의(라고 본인이 생각하는)에 순응하는 평범한 사람이었거나, 그가 의견을 표출한 시점이 티셔츠 사태 초반이 아니었다면

아마 그도 그때처럼 세게 말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보지 못하던 곳에서 페미니스트들은 이렇게 죽어나갔을까?

 

개인적으로 페미니스트들은 시대의 흐름에 잘 편승해서 죄다 잘먹고 잘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리석었다.

 

2010년대 중반기에 대한민국을 흔들던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소리없이 죽어나갔다.

 

극히 일부의 셀럽(또는, 다음 세대의 여성들이)만 투쟁의 과실을 얻었다.

 

대표적으로 뒤늦게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인증하는 아이돌이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여성~~제도 등을 도입하는 국회의원들이 과실을 얻었지만

 

최전방에서 소리치던 그들은 잊혀졌다.

 

 

벌써 뉴스도 이렇게 나오는 실정이다.

 

 

이번 일을 통해 깨달은 바가 있다.

1. 무형의 가치에 나를 소진하지 말자.

 

2. 대중은 선악이 명확한 단독 객체가 아니다. 대중을 계몽하려 하지말자.

 

 

그래도 나름대로 잘먹고 잘사는 내가 말라죽어가는 이들에게 뭘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보았는데,

모두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없으니

 

글쓴이에게 소소하게 후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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