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수행사 피엠한테 뜬금없는 요청을 받았다.
PM : 우리가 진짜 진짜 진짜 급해서 그러는데 디자인 가이드 하나만 좀 써주면 안될까?? 제발
FE : 네?? 디자인 가이드랑 인터페이스 정의서는 반년도 전에 드렸고 지난주에는 현행화까지 끝내서 AA한테 컨펌까지 받았는데요..
PM : 우리 프로젝트에 돼지불백레시피 전산화 업무있지?? 고객사에서 화면 발로찍었다고 통과를 안시켜주네.
FE : 저는 그쪽 업무화면 만든적이 없는 것 같은데..??
PM : 우리가 돈아낄려고 SAP으로 프리 시켜서 만들었어. 어차피 이쪽업무는 독립적이라 걍 돌아가기만 하면 되거든.
근데 문서도 없이 만들다보니 화면이 답이 없네.. 자네가 힘좀 써봐
FE : 이미 개발 다 끝나고 사람 다 철수한 프로젝트를 제가 어떻게...
PM : 거기 화면이 50개정도 되거든? 대충 훑어보면서 각 화면들의 공통점을 찾아봐. 표준을 만드는거지. UX적으로다가 고칠 곳이 있으면 (*수정 요망) 이런것도 붙여주고 말이야. 괜찮지??
FE : 아니 개발 표준은 설계단계에서 충분히 협의하고 정해야하는거지 이미 개발된 화면에서 표준을 뽑아낸다는건 말도 안되는...
PM : 아니아니 우리는 완벽한 결과물을 원하는게 아니야. 어떻게든 고객 컨펌만 통과하면 된다니까?? 자네가 똭 와서 'UI개발자로서 이부분 고치면 되구요. 표준은 이렇습니다' 이렇게 문서로 똭똭 해주면 간단하게 끝날 것 같구만.
FE : 이건 제가 판단할 문제는 아닌것같구요. 저희 대표님이랑 한번 통화해보겠습니다.
사장 : 해줘
FE : 아니 사장님 저거 답없습니다. 저거 괜히 해줬다가 저희랑 계약도 안되어있는 프로젝트에 발 집어넣게 되는거에요.
나중에 UI에서 뭐 잘못되기라도 하면 골치아파집니다. 화면 퀄리티 대충보니 저거 통과하려면 전면적으로 수정해야되요.
사장 : 이런것도 못해주면 내가 영업을 어떻게 하겠나??
쟤네 내년에 10억짜리 프로젝트 들어가는거 알지?? 거기 우리 꼽사리 끼려면 이런것부터 해줘야돼.
내가 부탁 좀 하겠네. 꼭 좀 해줘.
FE : 하...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화면을 찍어내다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요구를 많이 경험하게 된다.
위 내용은 결국 내가 업무화면 하나하나 열어가며 공통점을 찾아내고, 문제점을 지적하며, 그 내용을 문서로 정리하여 피엠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뭐랄까.. 이러한 업무는 딱히 코딩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개발자가 아닌 사람이 할 수 있는 업무도 아니고...
한가지 확실한건 굉장히 골치아픈 업무였다.
아마 PM은 그렇게 고마워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사장도 그냥 끝났구나 정도로만 생각할 것이다.
단,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나의 무능력함을 지탄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아무리 잘해도 본전이고, 잘못되면 내가 덤터기 쓰는 기묘한 상황.
이러한 일을 겪지 않으려면 '내 일과 니 일'을 잘 이해하고 칼같이 자르는 스킬이 중요하다.
평소에 이것저것 문제가 생긴걸 살갑게 도와주던 나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이 문제였던 것이다.
뭐 팔자려니 하자.
이러한 성격이 나중에 도움이 될 날도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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